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
서독의 제약회사 그뤼넨탈(Grünenthal GmbH)에서 만든 부작용이 적고 지속성 있는 수면제이다.
시중에는 콘테르간(Contergan) 이라는 이름으로 1957년에 판매되었으며, 개발 당시에 실험에 이용되었던 동물들에게서 어떠한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아 “기적의 약” 이라고 불리었다. 동물 실험을 진행하던 그 당시에 개나 고양이뿐만 아니라 쥐, 닭 등 다른 동물들에게서 어떠한 독성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탈리도마이드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로 전 세계 각국에 보급되었다. 수면유도 및 진정효과 뿐 아니라 임산부의 입덧 완화에도 탁월하여 특히 아이를 가진 임산부들이 주로 이용했다.
그러나 시판 후 수 년이 지나고 부작용이 하나 둘 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탈리도마이드 분자는 수면 유도나 진정효과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혈관 생성을 억제하는 기능이 있어 태아의 혈관 생성을 막아 온전한 신체를 갖추는 것을 방해했다. 하여 약이 보급된 전 세계 각 국에서 수 많은 기형아들이 출생되었고 그들은 대부분 팔이나 다리가 없거나 온전히 자라지 못한 채 태어났다. 그 뿐만 아니라 약의 부작용 중 심근경색 및 뇌혈관 질환 등으로 전 세계 약 5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는데 이렇게 속속들이 부작용이 발견되자 결국 탈리도마이드는 논란에 휩싸인 채로 판매가 중단되었다.
그리고 그 후 ......

생각치도 못한 탈리도마이드의 부작용으로 의학계와 과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실험 동물을 통해 나타난 부작용은 인간에게도 동일할 것이라는 믿음이 완전히 깨어졌다. 누가 보아도 더 이상 동물 실험으로는 인간에게 안전한 약을 만들기 어려움에는 틀림이 없었고 여전히 세상에는 갖가지 질병들이 난무했다. 이를 두고 의학계와 과학계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앞으로의 신약 개발의 방향과 임상 실험에 대한 재고는 그뤼넨탈의 연구원이 아니더라도 의학계와 더불어 과학계에 몸 담고 있는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과제였다. 하지만 누구 하나 이에 대해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이미 탈리도마이드로 많은 사람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그것을 수습하기도 힘에 부치는 지경에 누군가 나서서 일을 벌이고 싶진 않았을 터였다. 침묵을 지키던 많은 의사들과 과학자들 가운데 드물게 금안을 가진 사내가 입을 열었다.
" 인간을 임상실험의 대상으로 정합시다. "
보다 확실하고, 정확하며 신뢰도가 높은 약을 만들 수 있다. 동물 실험의 오류를 확실하게 잡을 수 있다. 적절히 보상을 쥐어 주고 실험을 하면 꽤 성공적일 것이다, 가 사내의 발상이었다. 사내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되려 그들은 그러길 바랐고, 과학과 사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렴 달가운 말이지만 의사들과 과학자들은 남자의 의견을 선뜻 받아 들일 수 없었다. 이익을 논하기 전에 존엄성의 문제와 부딪힐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인류는 그 자체로 존엄한 존재.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실험을 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가져오는지 과거 많은 과학자들의 선례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터였다. 돌아온 대답에 기가 차다는듯 사내는 말했다.
" 아종(亞種)을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
" 너무 위험하네. 그건 우리가 손댈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사내는 해부학자였다. 그리고 의사였다. 그는 자신이 있었다. 야망이 있었으며 욕심이 많았다. 그에게 탈리도마이드나 동물실험은 오로지 인간을 연구하기 위한 발판일 뿐. 오히려 탈리도마이드에 의해 태어난 기형아를 관찰할 생각에 기대가 차 있었다. 야심차게 내놓은 제안이 흔쾌히 받아 들여질 것이라 자부한 그와는 다르게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겪은 모두는 겁을 냈다. 못내 아쉬운 사람도, 강하게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앞으로 더 큰 파장이 일어 날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모두는 남자의 제안을 거절했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남자는 모든 것을 정리했다. 갑갑한 곳. 원대한 자신의 꿈을 이루기엔 둥지가 너무 작다며 혀를 찼다.
* * *
" 어쨌든.....
인간만 아니면, 되는 거잖아? "
남자는 넓은 땅, 자유로운 고국으로 돌아갔다. 캐나다 남부의 적막한 도시, 겨우 방 몇 개가 있는 지하에서 "키프로스(Cyprus)" 라 이름지은 자신의 연구소를 열었다. 빛이 겨우 들어오는 연구실 한 켠에서도 남자는 자신이 있었다. 독일에서의 모든 것을 정리하면서 자신을 따라온 스무 명 남짓한 연구원들을 데리고 기나긴 시간을 연구에 몰두했다. 그렇게 어느덧 1964년, 첫 번째 수인 "레토(Letho)" 가 탄생했다. 인간도, 그렇다고 완전한 동물도 아닌 아종(亞種). 인간의 몸을 하면서도 동물의 모습을 할 수 있는 존재. 인간에 미치지 못하지만 동물보다는 수명이 길고 지능적으로 뛰어난 존재. 하지만, 인간과 동물의 DNA를 끊임없이 배양하고 보완하여 만들었음에도 첫 레토는 만들어진지 단 3시간 만에 죽고 말았다. 인간의 DNA를 기초로 동물의 DNA를 결합하는 과정이 불완전한 탓이었다.
젊음을 바쳐 연구를 진행해온 남자는 포기를 몰랐다. 이미 주름살이 늘어가는 나이에 다시금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바쳐 실패뿐인 연구를 진행해나갔다. 늘 오류가 나기 십상인 연구를 보완하고 수정하는 기간은 길었으며 하는 족족 수많은 실패를 떠안고 가야만 했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르고 1974년, 온전한 2세대 레토들이 태어났다. 늑대의 유전자에 인간의 유전자를 결합하여 만들어낸 이란성 쌍둥이. 1세대 레토를 경험한 연구원들의 우려와는 달리 그들은 3시간이 지나도, 48시간, 1240시간이 지나도 죽지 않았다. 1세대와는 반대로 동물의 DNA를 기초로 인간의 DNA를 잘라내어 덧붙인 실험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안정적이었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 끝끝내 온전한 레토를 만든 늙은 사내는 며칠 후 홀연히 침상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 후, 그의 아들이 치프 자리를 맡으면서 연구소는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치프는 2세대 레토들을 중심으로 더 많은 레토를 만들어 나갔다. 종(種)의 구분과 성별에 상관 없이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닥치는 대로 레토들을 만들어 내었고 그렇게 태어난 레토들은 동물의 특성을 기본적으로 지니면서도 인간의 특성을 지니고 있어 임상실험에 적격이었다. 많은 레토들이 태어났고, 많은 레토들이 죽었다. 레토를 이용한 임상실험으로 키프로스는 부작용이 없고 " 완벽하게 안전한 " 약을 만들 수 있었으며 삽시간에 전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게 되었다. 새로운 치프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본래 연구소 이름을 미국식에 맞추어 "사이프러스(CYPRUS)" 로 개명한 후 공식적으로 제약회사를 설립했다. 모든 연구의 핵심이 존재하고 있는 연구소는 제약회사의 본사와는 멀리 떨어진 곳에 따로 지하 시설을 구축해 비밀리에 운영하기 시작했고, 사이프러스의 연구원들과 그 외에 연구 내용을 알고 있는 모든 외부인들은 인간과 다른 레토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 또한 레토가 임상실험에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철저하게 비밀로 지키고 있다.
1986년,
레토들을 동원한 실험은 여전히 진행중이며 사이프러스는 끊임없이 신약 개발에 착수하고 있다. 현재 연구소에는 2세대 레토 쌍둥이와 수십명의 레토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
※ 본 스토리는 픽션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국가, 단체,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